주방의 불길한 기운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8시 반, 당신은 이제 일어나서 당신의 아내를 한번 생각하고, 그리고 당신의 새로운 내연녀를 한번 생각하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 곳의 시간은 언제나 8시 반, 당신은 지금의 일상을 후회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에 빠져있어. 그래서 당신은 항상 지니고 있던 것을 기억할 수 없음에도, 이 곳의 모든 시간을 소비하려고 하네. 나는 왜 그런 당신을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면서, 당신의 모든 소외감으로부터 뿜어내려는 자극들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어. 내가 이 주방에서 당신이 앉아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 당신은 이 주방의 규칙에 대해서 어떤 반란을 일으키지 않아, 하지만 당신은 동요하지. 그런 너를 나는 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나쳤을까.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8시 반. 어떤 저녁도 아침을 삼키고, 어떤 저녁도 오후를 삼키지. 나는 항상 가벼움으로 그 저녁을 지나쳤던 거지. 얼마나 많은 자극들을 당신이 원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어. 그래. 나는 이미 알아버렸어. 어쩌면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그 모습을 기억한거지. 나는 그저 어느 날 언제나 처럼 평온한 저녁을 기다렸는데. 그날따라 당신의 비참해진 자존감을 느껴버린거야. 그것이 나의 기억 속에 존재할 만큼, 그렇게 값어치가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모르지. 하지만 나는 나의 눈을 기억해. 그리고 당신의 눈을. 그 모든 빛들이 점점 소멸해가는 어둠을. 우리의 빛들이 소멸해가는 어둠을. 하지만 그리워해. 당신을 처음 만났던 때에, 당신이 했던 이야기들을. 그것을 잠시라도 믿었던 나는, 이제 사라져가는 눈동자에 대해서 눈물을 만들 수 없지.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8시 반. 당신의 해는 동쪽으로 기울어가며, 나는 서쪽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태양이 뜨기를 기다리던 곳.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어떤 해도 뜨지 않는 채, 저녁 만을 남기는 곳. 누구도 그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그들의 마음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하지. 이 주방의 시간으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어둠이 있던, 빛에 있던, 우리는 언제나 빛 속에서 만남을 유지하였으니. 나는 사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당신은 그렇게 모든 것을 소비해야만 했을까. 주체할 수 없는 것들에 하루의 저녁을 맡기기 위하여.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그동안의 당신의 저녁을 갉아먹으려는 지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면서. 나는 그런 것을 바라봤던 거야. 이제 이 주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멈춰버린 시간에서, 어떤 움직임도, 미동도 없는 마음만이 질척거리는 기분에 대해서. 당신이 바라보던 저녁의 달도 사라진 지금. 당신의 마음 속의 어둠에 대해서 갈피를 잃은 것. 언제나 떠나갈 것을 생각하면서, 당신이 멈춰버린 시간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무엇도 다시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이미 굳어버린 시침과, 분침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 당신의 마음이 지쳤겠지. 그렇다고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 시간의 째깍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불안을 자극했던지. 그렇다고 우리가 덧없는 존재인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주방에서 나가려고 해, 당신의 멈춰버린 시간으로 부터, 그리고 그 모든 불길한 기운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해, 이 멈춰버린 주방 안에서, 그렇게 엮인 관계들과, 어쩌면 당신의 과거와, 또는 현재와, 미래로부터, 그리고 8시 반으로 부터.